홋카이도를 여행한다면

허태우 2013. 2. 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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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디맑은 하늘과 푸르디푸른 초원이 가득한 여름. 혹은 희디흰 순백의 눈으로 세상이 뒤덮이는 겨울. 바로 일본 '홋카이도' 하면 떠오르는 그림 같은 풍경이다. 우리나라의 약 80% 면적에 550만명이 사는 섬 홋카이도는 요새 유행하는 '힐링 여행'을 하기에 제격인 곳이다. 그저 이곳의 자연을 바라보기만 해도 혈관의 찌꺼기가 10%는 빠져나가는 듯하고, 지산지소(地産地消)의 먹을거리까지 더하면 뱃살이 1인치쯤 늘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 듯하다. 거기에 0.5인치를 더 붙이려면 삿포로 맥주를 마시면 되겠다. 이 정도면, 홋카이도는 여행자에게 '준(準)파라다이스'라고 할 만하다.

놀랍게도 불과 200년 전까지, 홋카이도는 그저 불모지였다. 일본 본토 사람들은 혹한의 추위와 눈을 뚫고 섬을 애써 개척할 필요가 없었다. 그 당시에 이곳을 여행한다는 것은 노련한 탐험가나 할 짓. 그래서 이 섬은 토착민 아이누족이 살던 그들만의 땅이었다. 그들은 겨울이 오면 집에 틀어박혀 전통 악기인 무쿠리를 튕기면서 1년에 걸쳐 천천히 훈제한 연어를 먹었다. 상황이 급변한 시기는 19세기 중반이다. 전 세계 열강의 팽창 정책에 힘입어 드디어 홋카이도 개척이 시작되었다. 일본인은 바다를 건너와 홋카이도의 상징인 붉은 별(삿포로 맥주의 상징이기도 하다)이 그려진 깃발을 흔들며 북방의 땅을 갈고 갈았다. 도시를 세우고, 농장을 짓고, 술 공장도 세우고… 이렇게 홋카이도는 지금에 이르렀다.

ⓒ론니플래닛매거진/케이취 제공 고토 스미오 미술관의 내부에 있는 전시실. 외딴 곳에 있지만 일본 전역에서 관람객이 찾아온다.

어렵사리 일궈낸 땅은 자신만의 운명을 지니는가보다. 개척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건만, 일본인은 여전히 홋카이도를 가장 좋은 이주지로 손꼽는다. 특히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에게 말이다. 그래서 귀농과 이주가 꾸준히 이어진다고 한다. 대문을 열면 바투 다가오는 그림 같은 풍경. 여기에 모두가 반한다. 현대 일본화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고토 스미오(後藤純男)도 마찬가지다. 일본 지바 현 출신의 그는 1987년 홋카이도에 아틀리에를 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곳의 웅대한 자연을 가까이에서 더 많이 그리고 싶어서다. 가미후라노(上富良野) 지역의 언덕에 있는 아틀리에에서는 너른 평원 너머로 도카치다케(十勝岳) 산이 펼쳐진다. 이곳은 1997년 고토 스미오 미술관으로 거듭나, 이제 누구나 홋카이도의 사계를 보며 그가 느꼈던 감성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고토 스미오는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화가"

고토 스미오 미술관은 규모는 작지만 홋카이도에서 꼭 가봐야 할 미술관이라는 말을 듣는다. 고성이나 고신사 같은 일본스러운 문화재가 없는 홋카이도의 약점을 일본 '국민 화가'의 미술관이 살짝 덮어주는 것이다. 그렇다. 고토 스미오는 일본의 '국민 화가'다. 어느 정도나 유명하기에 그런 칭호를 붙이는 걸까? 1930년생인 그가 한때 인스턴트커피 브랜드의 광고 모델이었을 정도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안성기나 한석규급이다. 일본화라는 특성상 타국에서 인지도가 떨어질 뿐이지 일본에서는 내로라하는 미술가인 셈이다. 그의 작품은 요즘 평균 3억 엔에 판매된다고 한다.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화가"라는 미술관 부관장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론니플래닛매거진/케이취 제공 고토 스미오 미술관의 외관.

전시실에는 거대하고 화려한 일본화가 가득 걸려 있다. 중국이나 한국의 수묵화와 달리, 일본화는 색을 많이 사용한다. 천연 안료를 사용해 색을 쓰고 금박 등을 이용해 화려함을 덧입힌다. 그런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천연 물감을 만드는 것도 고된 일이고 그 물감을 사용하는 것도 섬세한 테크닉이 필요하다. 유화와 달리 덧칠해 색을 바꾸는 것도 불가능해서, 한번 그리면 끝이다. 재료비도 만만치 않다. 천연 안료에 사용하는 광석이나 호분(胡粉:조개껍질로 만든 안료)은 금값이다. 예부터 가장 비싼 보석 중 하나가 천연 안료의 재료였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파란색 망토를 두르고 있으면 '에르메스'(프랑스 명품 브랜드)를 걸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화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 를 보면 바로크 시대에도 물감의 재료를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알 수 있다. 아직도 특정한 색을 내는 천연 안료는 작은 음료수병만 한 양이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이런 고가의 재료로 자연의 색을 내고 그 색을 이용해 모골이 송연할 만큼의 감성과 테크닉으로 대작을 완성해낸 사람이 바로 고토 스미오다. 교토와 후지산의 풍경, 홋카이도의 자연, 중국의 명산을 담은 그의 작품은 천천히 눈을 통해 들어와 촉각을 자극한다. 태양과 달은 빛나고(진짜 금을 사용했으니까) 벚꽃과 눈은 질감이 살아 있다(호분을 사용해서다). 일본화를 통해 이 작은 미술관은 스스로 사계를 머금은 듯하다. 자연을 사용해 자연을 그렸다. 홋카이도에 이만큼 어울리는 미술관이 또 어디 있을까.

ⓒ론니플래닛매거진/케이취 제공 일본화를 그릴 때 사용하는 천연 안료. 예부터 천연 안료는 가장 비싼 보석 중 하나로 여겨져왔다.

✚ 고토 스미오 미술관

일본의 국민 화가 고토스미오의 아틀리에 겸 미술관. 아름다운 도카치다케를 전망할 수 있는 가미후라노 언덕에 위치해 있다. 교토, 나라, 홋카이도를 비롯한 일본 각지의 사계절을 담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연중 무휴, 9:00am~5pm(11~3월 9am~4pm), 입장료 1000엔, www.gotosumiomuseum.com

✚ 머물 곳내추럭스 호텔(Natulux Hotel)

후라노 역 바로 앞에 위치한 내추럭스 호텔은 후라노의 자연을 테마로 한 부티크 호텔이다. 세련된 객실과 스파, 유기농 식재료를 사용한 요리로 호평받는 레스토랑 등을 갖추었다. 2만1000엔부터, natulux.com

✚ 볼 곳후라노 치즈 공장(富良野チ-ズ工房)

이 지역 카망베르 치즈의 생산 과정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곳이다. 방문객은 유리 너머 치즈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공정을 살펴본 뒤 공장 안에 마련된 치즈숍에서 다양한 치즈를 시식할 수 있다. 이곳에 함께 자리한 아이스크림 공장과 피자 공장에서는 직접 버터나 아이스크림·빵·치즈 등을 만들어볼 수 있는 워크숍을 운영한다. 워크숍은 매일 열리며, 베이커리 실습은 사전 예약이 필수다. 무료, 4~10월 9am~5pm, 11~3월 9am~4pm, +81 167 23 1156, furano-cheese.jp 

✚ 먹을 곳유아독존(唯我獨尊)

몸에 열을 내는 음식인 카레는 겨울철 혹독한 추위로 유명한 후라노의 대표 음식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카레를 생각하면 오산. 유아독존에서는 수제 소시지와 신선한 오믈렛이 어우러진 후라노식 오무 카레를 맛볼 수 있다. 후라노 역 바로 앞에 위치한 내추럭스 호텔 근처에 있으며, 오래된 목조 농가 건물을 찾으면 된다. 1000엔부터, 11am~9pm, 월요일 휴무, +81 167 23 4784

✚ 마실 곳모리노도케이(森の時計)

일본 드라마 < 다정한 시간(優しい時間) > 의 촬영지로 일본 현지에서도 유명한 카페다. '숲의 시계'라는 이름처럼 숲 속에 자리해 있어 고즈넉한 자연 속에서 드립 커피와 세 가지 케이크를 즐길 수 있다. 신후라노프린스 호텔(New Furano Prince Hotel)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1000엔부터, 12pm~8:30pm, +81 167 22 1111

허태우 ( < 론리플래닛 매거진코리아 >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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